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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필 한석봉의 행복하지 않았던 삶

아으 2008.09.09 16:51 조회 수 : 3730

출처  

석봉(石峯) 한호(韓濩)의 어두운 방 안에서 글씨 쓰기와 그의 어머니의 떡 썰기 대결에 관한 일화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 수련을 거친 한호는 위대한 명필로 유명하지만 알려진 사실은 그 뿐이고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사항이 없습니다. 실제 한호는 명종 22년(1567), 진사시에 급제하여 관직은 사자관(寫字官, 글씨를 깨끗이 정서하는 관리)이었습니다. 그가 사자관이라는 미관말직인 것은 학문이 따라주지 못했는지 몰라도 요즘으로 치면 고시인 대과에 응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글씨는 뛰어나서 웬만한 외교문서는 모두 그의 손을 거쳐 갔습니다.

 

그리하여 한호의 명성은 중국에도 알려지게 됩니다. 그래서 명으로 가는 사신을 수행하거나 반대로 명에서의 사신을 맞을 때에도 그의 글씨는 빛을 발했습니다. 특히 임진왜란의 발발로 원군으로 출전한 명군 장수들에게 그의 글씨는 최고의 인기였습니다. 그러므로 어찌 보면 한호는 임진왜란이라는 국난 극복의 일부분을 담당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이를 감안한 선조의 배려로 전란이 끝나자 그는 가평의 군수로 부임하게 됩니다. 원래 선조의 의도는 갑자기 글씨 쓸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부르기 쉽고 그러려면 공무가 번잡하지 않도록 다스려야 할 백성이 적은 고을의 수령을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한양과 가깝고 임진왜란 전부터 잔읍(殘邑, 황폐한 고을)으로 분류되어 백성의 수도 적은 경기도 가평이 적격이었습니다. 그러나 가평의 상황은 선조의 생각처럼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한호의 행정능력도 그리 탐탁치 않았습니다. 고을 업무를 아전들에게 모두 맡긴 한호는 가평 여기저기를 유랑하며 글씨를 쓰는 데에 세월을 보냅니다. 이렇듯 수령이 행정을 방기한 상태이니 고을이 제대로 못 돌아가고 이를 사헌부가 가만히 놔둘 리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진사시에만 출사를 하고 대과는 치르지 않았는데, 종4품의 군수에 제수된 것에 그리 곱지 않게 여기던 한호였습니다.


한호에 대한 탄핵이 줄을 잇자 그를 변호해주던 선조도 이를 받아들여 가평 군수 자리를 파면하고, 그의 창작을 돕기 위해 경치 좋은 금강산 인근의 흡곡 현령에 제수합니다. 하지만 이쯤에서 한호도 부아가 치밀게 됩니다. 오직 글씨 하나만 바라보고 살았고, 그 글씨로 국위선양은 아니더라도 대국인 명에게 호감을 주어 조선의 국가 이미지 개선에 일조를 담당했는데도 그런 공은 안 알아주고, 할 줄도 모르고 해보지도 않은 고을 행정을 맡기는 것도 모자라 대과출신이 아닌 낙하산 인사라고 탄핵까지 받은 상황이니 심사가 뒤틀려도 크게 뒤틀렸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사고를 치고 맙니다.


선조의 명으로 임진왜란의 공신을 선정하고 이 공신들에게 교서(敎書)를 써서 건네는 일에 한호가 참가할 때였습니다. 임금의 이름으로 나가는 문서이니 명필로 유명한 그가 서류를 작성하는데, '신하 신(臣)'을 '클 거(巨)'로 잘못 표기한 것입니다. 이에 사헌부의 탄핵이 있었지만 선조는 그냥 무마시켰습니다. 그리고는 한호에게 녹권(錄券, 공신책봉자의 직함·이름 및 책봉 경위 등을 적어놓은 일종의 공신 신분증) 제작을 맡겼는데, 여기서도 그는 틀린 글씨를 쓰고 맙니다. 이건 모두 그가 의도적으로 그리 했던 것입니다. 결국 우호적이던 선조도 사헌부의 주장을 받아 들여 그의 파직을 윤허합니다.


그리고 얼마 뒤 한호는 유명을 달리 하고 맙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한호는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으로 불우한 환경을 극복하고, 당대 최고의 서예가로 자리매김한 인물인 것은 확실하지만 그의 삶은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평생을 바친 글씨보다 오직 출신만 강조했던 조정 중신들의 시샘으로 벼슬자리에 올라서도 좋지 않은 소리를 들어야만 했고, 수시로 들어오는 사헌부의 태클에 마음고생도 해야 했습니다. 조선에서의 석봉 한호의 명필로서의 명성은 한참 후배인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와 쌍벽을 이루지만 그의 삶 자체는 추사보다 별로 나을 것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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