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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오리엔트 신화여행(2)

햄과콩이 2007.03.11 14:10 조회 수 : 3563 추천:4

출처  

거룩한 소(聖牛)

 

이집트에서는 토테미즘의 유존(遺存)이 강하여 소, 고양이, 악어, 매 등의 동물이 신성시되여// 미이라로 만들어졌다.

특히 유명한 것이 <아피스의 황소>라고 불리는 무네비스신(가축신)의 거룩한 짐승으로 지정된 황소로서 전국민이 예배했다. 이것이 죽으면 미이라로 만들어 정중하게 장사하고 새로이 전국에 일정한 특징(검은 황소로서 이마에 흰 삼각형의 무늬가 있고 다리 옆구리에 초생달 반점이 있는 것)을 가진 송아지를 찾아서 다음 대의 아피스의 황소로 삼았는데, 발견되면 수도 멤피스에 모시었다.

파라오(이집트의 왕의 총칭)는 가끔 황소로 상징되고, 유명한 나르메르(메네스)왕의 팔레트(화장판)에도 황소의 모습을 한 적을 겨파하고 있는 장면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황소의 힘과 번식력은 오리엔트 각지의 농경 민족 사이에서 널리 숭배되었고, 이집트에서의 신앙의 중심은 멤피스, 헤리오포리스, 테에베 등이었다.

아피스의 성우(聖牛)의 장례에 관해서는 파피루스의 단편에 적히어 있고, 미이라를 넣어 둔 지하분묘는 사카라를 비롯해 상당히 많다.

 

 

피라밋

 

이집트 제1 왕조(BC3000년) 때 마스터바(걸상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아라비아어로 이렇게 부른다)라고 불리는 세계 최고(最古)의 석조 분묘가 만들어졌다. 제3 왕조(BC2800년)의 조제르왕은 거대한 마스터바를 겹쳐 쌓아서 이른바 계단식 피라밋을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스네풀랑은 그 측면을 메워서 상반부와 하반부의 경사가 다른 소위 굴절 피라밋을 만들었다. 제4 왕조(BC2700년)은 이것을 이어받아 현재 기제(카이로 서쪽)에 남아 있는 최대 최고(最古)의 피라밋이란 기제의 쿠프, 카프라, 멘카우라 3대에 걸쳐서 조영된 것이다.

피라밋이 조영된 것은 제3, 제4, 제5 왕조가 중심으로서 이른바 피라밋 왕조라고 불리지만, 후에 나일강 상류 메로에 부근에 이디오피아인 왕조가 햇볕에 구운 벽돌로 조영한 것을 포함하여 60개 이상을 헤아린다. 피라밋은 파라오의 분묘로서 그들의 재위 때부터 조영되었으며, 나일강의 범람기(농한기)에 전국민을 동원하여 건설하였다.

쿠프의 최대의 피라밋은 현재에도 세계 최대의 석조 건물로서, 그 네 변은 정확하게 동서남북을 향했고, 5천 년 후인 오늘까지도 거의 이상이 없다. 헤레도투스(그리이스인, 역사의 아버지라고 불림)는 10만의 사람이 20년 간(그러나 일년 중 3개월씩) 일해서 만들었다고 전하고 있는데, 현대의 공학적 계산으로도 이것은 옳다고 하고 있다. 이것은 단독이 아니며, 부속의 장제전(葬祭殿), 나일강 안에 통하는 통로, 왕비, 왕자의 작은 피라밋, 정신(廷臣)들의 마스타바 등이 한 구획(피리밋 콤플렉스)을 이루고 있으며 주위는 벽돌담으로 둘러싸여 있다. 유명한 대스핑크스는 제2 피라밋에 부속되어 있는데, 그 건설자 카프라의 소상이다.

고래로 세계의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쳐 왔으나 19세기 이집트 고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영국인 페트리가 그 최초의 과학적 연구를 하였다. 그것에 따르면 바닥 면적 약 5백 피이트, 평균 2톤의 반의 큰 석재 2백 30만 개가 들었다고 계산되어 있다. 내부에 왕과 왕비의 묘실이 있지만, 모두 약탈당하고 대석관만 남아 있을 뿐이다. 왕의 묘실에서 위쪽 정북쪽을 향하여 통로가 있고, 그 방향의 끝으로 북극성이 보이는 점에서, 이것이 천문대의 구실을 하였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 표면은 현재는 헐었으나 카프라의 둘째 피라밋의 정상 부근에는 채색 벽돌이 남아 있어 일찍이는 전표면이 화장 벽돌로 덮이어 있었다고 추정된다. 수도가 델타 지대의 멤피스에 있는 시대에는 피라밋은 주위를 위압하는 왕장의 분묘로서 어울리었으나, 서울이 북부 계곡의 테에베에 옮김과 동시에 피라밋을 대신하여 암굴 분묘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유명한 미이라들

 

이집트는 극도로 건조해 있기 때문에 매장된 시체는 자연히 미이라로 화한다. 그 때문에 이집트 사람들은 죽은 이의 부활, 또는 영생을 믿고 오랜 옛날부터 미이라를 제조하였고, 그로 인해 화학 지식이 아주 발달하였다. 미이라의 제조법은 뇌와 내장을 꺼내어 각각 단지에 담아 둔다. 시체는 수십 일간 약물에 담가 두었다가 그것을 건조시켜 방부제를 바르고 삼베로 엄중하게 말아 둔다. 그 다음에 소정의 의식을 치르고 관에 거둔다.

고대 말기부터 중세에 걸쳐서 미이라가 양품으로서 비싸게 매매되게 되어 많은 귀중한 미이라가 분실되었다. 그러나 현재 보존되어 있는 것 중에는 제18 왕조의 아멘 호테프 4세, 츠탄카멘 제19 왕조의 세치 1세, 라메스 2세, 등 BC 14세기부터 13세기에 걸친 유명한 파라오의 것이 있으며 카이로 박물관에 수장되어 있다. 특히 테에베의 <왕릉의 계곡>에서 도이치인 보르구시는 단 하나의 분묘에서 23개의 왕이 미이라를 발견했다. 이것은 도굴을 피하기 위해 가끔 미이라가 이전했기 때문이다.

가장 보존이 잘 된 미이라로서는 세치 1세의 것이 유명한데, 왕후의 미이라는 특히 황금 삼나무, 석재 등으로 만든 이중, 삼중의 관에 넣어 두는 경우가 많았다.

 

 

테에베의 유적

 

테에베는 카이로 상류 약 5백 마일 지점에 있고, 제11 왕조(BC2000년 경) 이래의 이집트 제국의 서울이 있었던 곳으로서, 유적군(群)은 왼쪽 기슭의 <왕릉의 계곡> 델 엘 바프리의 대암굴 신전 및 바른쪽 기슭의 카르낙과 룩소르로 나누어진다.

왕릉의 계곡은 제18, 19조의 제왕이 암굴을 파내어 장려한 분묘를 만든 곳이며, 유명한 츠탄카멘의 분묘도 여기에 있다. 도구을 면하기 위하여 입구를 사람의 눈에 뜨이지 않게 숨겨 두었으나, 그래도 묘도둑들이 마구 털어 가고 망쳐 놓았다.

델 엘 바프리는 하트 셰브 수트 대여왕이 조영한 테에베 서방의 대암벽을 파내어 만든 대신전으로서, 지금도 그 장려함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카르낙은 테에베의 수호신이며 이집트 제국의 주신이었던 아멘에 봉헌된 대신전 지구로서, 고대 이집트의 나폴레옹이라고 일컬어진  토토메스 3세(대왕)가 건립한 것이다. 그 벽면에는 대황의 업적을 나타낸 조각과 역사적 비문이 있고, 그 열주(列柱)의 굵기는 직경 5미터에 이르고 있다.

룩소르는 제19 왕조의 라메스 2세가 조영하였고, 그 후 대대의 라메스가 이것을 확충했다. 거기에 그려져 있는 카데슈의 싸움(BC13세기의 이집트군과 히타이트 시리아군과의 전쟁)에서의 라메스의 분전(奮戰)을 나타낸 조각과 역사 비문이 유명하다. 이 이집트의 테에베는 그리이스의 그것과 구별하여 특히 <백문(百門)의 테에베(문이 백 개 있는 큰 도시)>라고 불린다.

현재 이집트 유수의 관광지로서 카이로에서 공로, 철도, 수로가 발달하고 관광시설도 완비하였으며, 암굴 분묘 안에는 일루미네이션도 장치되어 있다.

 

 

츠탄카멘의 묘

 

츠탄카멘이란 기원전 1350년 경 이집트 제18 왕조 말기의 왕으로, 1922년에 카나본경과 카터가 이 도굴되지 아니한 완전한 분묘를 발견하여 수많은 재보가 나타나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는 유명한 배교자 이크나톤의 사위로서 5년 간 통치 후에 18세란 젊은 나이로 죽었다. 이런 이름 없는 소년왕마저 이토록 장려한 분묘를 만들었으니, 토토메스 3세, 라메스 2세 등의 대왕의 분묘는 얼마만한 것이었겠는가 하고 사람들은 새삼스러이 이집트 왕의 부(富)의 힘에 놀랐다.

이 발견 후 유럽에서는 얼마 동안 이집트식 복식이 유행하며, 이집트학(學)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분묘는 미이라를 넣은 황금의 관을 놓은 묘실, 보물실, 대기실, 부속실의 네 방으로 된 비교적 소규모의 것이었으나 그래도 그 유품의 정리에는 10년이 걸렸을 정도이다. 그의 미이라는 다섯 겹의 큰 관에 넣어졌는데, 마지막 관은 235킬로그램의 순금으로 되어 있다. 미이라 자체는 아주 유감스럽게도 잘못 보존되었으나, 거기에 부장된 황금 제품과 보석 따위는 꽤 많아서 11개의 팔지, 15개의 반지, 여섯 벌의 귀고리, 왕의 지팡이, 왕관 등은 모두 황금이고, 진주와 유리 옥수(玉髓) 기타 보석이 그 싼 턴 사이에서 발견되었다.

보물실에서는 왕의 수렵용 이륜차, 청동의 소형 조상 413개, 갖가지 농구의 모형, 그리고 두 영아의 시체를 넣은 네 겹으로 된 두 개의 관과 작은 나무상자에 넣어진 세계 최고(最古)의 철제품인 끌 등이 별견되어 유품은 모두 3500점에 달했다.

 

 

파라오의 저주

 

<왕릉의 계곡>에 묻혀 있던 왕의 묘도 긴긴 세월 사이에 거의 모두 도굴되어 있었다.

그런데 1922년 영국의 고고학자 카터와 카나본경 등이 토우토 안크 아톤 왕(아톤은 후에 아멘이라고 개명하고, 츠탄카멘이라고 불린다)의 거의 완전에 가까운 묘를 발견하였다.

그런데 카나본경이 이듬해 4월에 독충에 찔려 3주일 동안 고생하다가 죽었다. 그러자 연달아 발굴에 관계했던 사람들이 변사(變死)했다고 소문이 났는데, 그것은 <파라오의 저주>때문이며, 토우토 안크 아멘의 묘에는 <파라오의 휴식을 방해하는 자에게는갑자기 죽음이 닥치리라>는 저주의 명문(銘文)이 있었다고 한다.

 

 

느브갓네살 대왕

 

앗시리아를 멸하여 신바빌로니아를 건국하고, 수도 바빌론을 세계의 중심으로 번영시킨 영주이다.

그는 또 유대를 멸망시키고 그 주된 사람 수만 명을 바빌론에 붙들어가서 <바빌론 유수(幽囚)>를 행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이름은 구약성서 <에레미아서> <다니엘서> 등에 기록되어 있어서 현재도 문학 세계와 친밀하다. 바빌론의 조정(弔庭)은 왕이 산간 지방 출신의 왕비 아미치스를 위로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하며, 또 왕이 야훼의 말에 따라서 <사람들을 떠나 소처럼 풀을 먹고, 머리털이 독수리같이, 손톱은 말과 같이 되어> 비로소 신을 인정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6번의 시도끝에 올립니다-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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